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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영의 안전 칼럼. ‘추락은 순간이지만, 사고는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김귀영의 안전 칼럼. ‘추락은 순간이지만, 사고는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고소작업대 추락사고와 스위스치즈처럼 뚫린 안전관리 시스템

 

공사현장에서 고소작업대에 폐자재를 싣고 하강하던 작업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고소작업대 작업 중 추락사고는 건설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중대재해 유형이다. 그러나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현장은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작업자의 부주의였다.”

안전대를 체결하지 않았다.”

순간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고는 단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중대재해는 대부분 여러 개의 안전장벽이 동시에 무너질 때 발생한다. 이번 사고 역시 단순한 추락사고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안전 시스템이 스위스치즈처럼 뚫려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안전 분야의 대표적인 사고모델인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의 스위스치즈 모델은 사고를 한 번의 실수가 아닌 여러 방어체계의 구멍이 일렬로 맞물린 결과로 설명한다. 치즈 한 장에는 작은 구멍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장의 치즈 구멍이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겹치는 순간 사고는 방어벽을 통과해 버린다.

이번 사고를 보면 그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치즈는 작업계획이었다.

고소작업대는 본래 사람 작업용 장비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폐자재 운반까지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대 적재 기준과 운반 절차가 명확히 통제되지 않았다면 이미 첫 번째 방어벽은 뚫린 것이다.  

두 번째 치즈는 공학적 안전장치였다.

안전대 미체결 상태에서도 장비 운행이 가능했고, 과적이나 편하중을 자동 감지하는 시스템 역시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작업자의 행동을 기계적으로 차단할 마지막 안전장벽이 부재했던 것이다.  

세 번째 치즈는 관리감독이었다.

관리감독자는 작업 전 안전대 체결 여부와 작업방법 적정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공정 압박과 반복 작업 속에서 관리 기능이 형식화되는 경우가 많다. 위험행동이 보여도 이번만이라는 관행이 허용되는 순간 또 하나의 치즈 구멍이 생긴다.  

네 번째 치즈는 조직문화였다.

현장의 많은 위험행동은 몰라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위험이 익숙해지고, 익숙함이 경계심을 무너뜨린다. “늘 하던 방식이라는 말이 안전수칙보다 우선되는 순간, 사고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고는 작업자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안전 시스템 전체가 동시에 무너진 사고라고 보는 것이 맞다.

하인리히의 사고연쇄성 이론 역시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불안전한 행동과 불안전한 상태가 반복적으로 누적될 때 결국 중대재해로 이어진다.  

안전대를 체결하지 않은 행동은 불안전한 행동이며, 이를 통제하지 못한 구조는 불안전한 상태다.  

문제는 대부분의 현장이 사고 이후에야 위험을 명확히 본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사후확신편향(Hindsight Bias)이다. 사고 전에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위험이 사고 후에는 너무나 당연한 위험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업안전은 사고 이후의 반성이 아니라 사고 이전의 통제가 핵심이다.  

프랭크 버드의 손실원인이론(Loss Causation Model)으로 보면 이번 사고의 출발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사고의 시작은 작업자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의 결함이다. 공정 압박, 생산 우선 문화, 형식적 위험성평가, 반복되는 위험행동 방치가 결국 직접원인을 만들고, 마지막에 추락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이번 사고는 건설기계 안전관리의 방향이 이제 사람의 주의에서 시스템 통제로 바뀌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제는 단순히 안전대를 착용하라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소작업대 역시 자동차 안전벨트처럼 인터락(Interlock)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안전대 미체결 시 상승·하강이 제한되고, 과적과 편하중이 발생하면 자동 경보와 정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AI 기반 위험행동 감지 시스템, 작업자 이탈 감지, 실시간 모니터링 기술 도입 역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호손효과(Hawthorne Effect). 사람은 자신이 관찰받고 있다고 느낄 때 행동이 달라진다. 실제로 관리감독자의 순회점검, AI카메라 모니터링, 실시간 피드백 체계가 작동하는 현장일수록 위험행동 발생률은 현저히 낮아진다.  

즉 안전은 좋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험행동이 반복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다.

중대재해는 단순히 한 노동자의 사고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의 붕괴, 기업 이미지 실추, 공사중단, 형사처벌, 사회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기계 사고는 더 이상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조직관리 책임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다.

사고가 발생한 뒤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손실에 비하면 안전은 가장 값싼 투자다.

추락은 순간이다.

그러나 그 추락을 만든 위험은 오래전부터 누적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험의 구멍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 어딘가에서 스위스치즈처럼 조금씩 이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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